네 아이 키우는 주경스님
부석사. 도비산 중턱에 위치한 이 절은 아담한 규모지만 신라 의상대사의 창건설화가 깃들어 있는 천년고찰이다.
이 사찰에는 초.중.고교생 4명이 주지 주경(45)스님과 함께 산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가 다섯 살 때 이곳으로 처음 온 이후 하나 둘 식구가 늘어 넷이 됐다. 이혼 등으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게 된 인근 지역 아이들을 주경스님이 맡아 기른 지 7년이 돼 간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86년 수덕사로 출가한 주경스님이 지난 23년간 수행자의 삶을 '나도 때론 울고 싶다'(불광출판사 펴냄)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1993년 월간 '불광'에 '물처럼 바람처럼'을 연재한 이래 '글 잘 쓰는 스님'으로 소문나면서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추려 처음으로 책을 냈다. 수록 글 가운데 '아이에게 매를 들다'는 '아빠 아닌 아빠'가 되어 네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일들을 진솔한 문장으로 썼다. 책 출간을 계기로 15일 인사동에서 만난 주경스님은 "흔히 하는 말대로 밥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다 보니 식구가 이렇게 늘었다"면서 "그러나 아이를 기르는 것이 단순히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 만이 아니어서 건강문제부터 학교생활, 친구관계에 대해 살펴야 하고 나쁜 버릇이 생기지 않는지 등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자식 기르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정이 조금 넘친다 싶으면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모자란다 싶으면 저 멀리 비켜서서 마음을 닫는다"며 자식을 키우는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그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혈육의 정'이다. 한 번은 아이들이 가출을 해서 크게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마음고생 끝에 겨우 찾아낸 아이들에게 "왜 가출했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가 보고 싶어서…"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그들에게 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주경스님은 아이들의 피붙이가 찾아오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한 번씩 다녀가고 나면 아이들이 일주일 넘게 가슴앓이를 하며, 매사에 의욕이 없어서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지내기 때문이다. 주경스님은 "가출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이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면 그 이후로는 가족을 만나도 좋고 함께 살아도 좋다고 굳게 약속했다"면서 "고교 1년생인 큰 아이가 3년 장학금을 받아낼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과외선생'이 되어 직접 가르친 효과인지 아이들의 성적이 부쩍 향상돼 마음이 뿌듯하다"며 '자식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대한다고 했다. 거짓말 때문에 아이에게 매질을 한 적이 있다는 그는 그 다음날 너무 태연하고 밝은 표정을 짓는 아이의 모습이 오히려 미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자신의 가슴에는 아이의 엉덩이에 든 것보다 더 아프고 심한 멍이 들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삭발염의(削髮染衣)를 한 회색빛 스님들의 모습은 마치 감정이 없는 무생물의 바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수행을 많이 했더라도 역시 살아있는 인간인 스님들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주경스님은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줘야 할 스님들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면서 "특히 수행에 진전이 없고 장애에 걸려 헤어나지 못할 만큼 심신이 고달파질 때, 간혹 출가 승려의 틀조차 한계로 느껴질 때 울고 싶다"고 말했다. "종단의 변화가 느릴 때, 남부끄럽게 불거지는 종단사태를 대할 때도 울고 싶어집니다. 일부 스님들이 고급 외제차를 탄다거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부끄럽고 울고 싶지만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어느 개인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승가공동체의 과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조계종 중앙종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종단 정치'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봐온 주경스님은 "요즘은 출가사회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대중매체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출가수행자에 대한 사회의 요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면서 "부처님이 가르친 것처럼 잘못을 범한 스님들에 대해서는 교계나 신도들이 일절 대응하지 말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묵빈대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999년 부석사 주지를 맡은 이후 수행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도 "아이들을 떼어놓고 또다시 출가할 수도 없으니 중생과 함께 어울리며 일상을 수행처로 삼고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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