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이는 스님에게 맡겨진 지 두 해가 자났건만 아직도 조르기만 하는
고집쟁이였다.
"스님, 다리 아파요. 산 벗 꽃 그늘에서 앉았다 가요."
노승은 암자가 아직 멀었으니 조금 더 가서 쉬자고 아이를 달랬다.
"어디쯤에서 쉬어요?"
산굽이 하나만 돌면 네 키만 한 바위가 하나 있지, 거기서 너와
나이가 같고 얼굴도 닮았던 아기 스님 이야기를 들려주마."
아이는 힘을 내어 걸었다.
"그 아기 스님은 어디로 갔어요?"
"2 년 전에 부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로 떠났단다."
"그럼 제가 삼촌 집에서 스님을 따라 오기 전이네요"
노승은 약속 데로 바위가 있는데 와서, 노란 산수유 꽃을 꺾어와
바위 앞에 놓고 합장했다. 바위가 돌부처라도 되는 양 노승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무슨 바위죠?"
노승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동자승도 노승을 할아버지처럼 좋아했고 먼 마을로 탁발 나갈
때도 꼭 따라나섰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은 동자승이
었다.
"탁발이란 그냥 받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이란다."
"어떻게 마음을 주고받아요?"
"내가 염불을 하는 것은 잘되라고 비는 내 마음을 주는 것이지"
"스님 염불을 듣는 사람은요?"
"역시 그 사람도 나에게 마음을 주지, 자기 먹을 양식도 부족한데
내 바랑에 곡식을 넣어주는 것이야. 그런 마음을 욕심 없는 마음이라고 하지"
"욕심 없는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돼요?"
"너는 어떻게 될 것 같니?"
"극락에 갈 것 같아요."
"극락이 어디에 있는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예요, 젊은 스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노승은 동자 에게 다시 말했다.
"극락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극
락이 있단다.
욕심 없는 그 마음이 바로 극락이고 행복이란다.
총명한 동자승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 날 부터 동자승에게는 '욕심 없는 마음'이 화두가 되었다.
추운 겨울날, 동자승은 노스님 몰래 탁발을 나갔다.
그러나 염불을 아직 할 줄 모르는 동자승에게 쌀을 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바랑을 채울 때까지 더욱 더 멀리 길을 걸었다.
동자승의 얼굴은 찬바람에 파랗게 변해가고, 날이 저물 무렵에
야
바랑에 곡식이 반 쯤 찼다. 암자까지는 까마득히 먼 거리인데,
바람이 매섭게 불고 눈이 내리는 하늘은 희끗희끗했다.
동자승은 돌아오는 길에 큰 다리쯤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리 밑에서는 거지 아이들이 깡통을 돌에 걸어놓고 허어 멀건
맹물 같은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얇고 찢어진 옷을 걸친 거지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추운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동자승은 탁발한 쌀을 거지들에게 줄까 말까 망설였다. 고생해서
얻은 쌀이니 암자로 가져가 노스님과 자기가 먹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노승이 들려주었던 '욕심 없는 마음' 얘기도 떠
올랐다.
결국 동자승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바랑의 쌀을 다 주고는 올라
왔다.
동자승은 다시 다리 밑으로 내려가 입고 있던 속내복과 양말을 다
벗어주었다. 헐렁한 홑옷만 입고 땅거미가 지고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동자승은 배도 고프고,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파 자기 키
만한
바위에 기대어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게 밤 동안 찬바람과 눈발을 피했는데
끝내 동자승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고 추위가 동자승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노승이 다음날 아침 바위에 도착했을 때 동자승은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바위를 동자바위라고 부른단다."
이 세상에서 동자바위가 된 동자승과 아이가 쌍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노승과 아이의 삼촌 가족뿐이었다.
먼저 극락으로 간 동자승은 부모가 사고를 당했을 때 바로 노승에게
맡겨졌고, 지금 합장하고 있는 아이는 삼촌 집으로 보내졌다가
노승에게 온 것이 다를 뿐이다.
산모퉁이를 돌 때 아이는 꽃향기가 묻은 봄바람과 마주 쳤다.
입고 있는 잿빛 장삼 자락이 팔락거렸다.
출처 : 한미 불교신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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